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(End of Pacific Series 1 터키)













여동생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 이 책 왠지 나의 눈길을 끈다.
동생이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펼쳐 보게 되었다.
여행기라는 장르에 빠져 있는 내게 터키 여행기인 이 책은 터키 여행을 준비하게 만든다.
언젠가 가 보리라 마음 먹었던 나라!
터키에 대해 이제 가야 겠구나 하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.
이 책을 읽으면서 내 친구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말이 있다.
실은, 그걸 빌미로 내게 하는 말이겠지만 말이다.
"관계의 많은 부분이 희생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.
우리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."
이걸 받아 들이기란 쉽지 않다.
희생이라는 건 나의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.
그래서 관계 맺기가 힘든 거 같다.
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장 무섭고 힘들기도 하지만,
'그' 사람이 또한 위안이고 버팀목 인게 아닐까 ??
"누구나 그러하다.
듣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이며, 그 말을 듣기 위해 털어 놓는 것이다."
충고나 위로가 힘든 이유는 그 사람이 준비 되어 있지 않으면 공허하기 때문이다.
혹은, 내가 그 사람이 아니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.
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들만 받아 들여지고 알게 되는 거 같다.
적어도 나는 그러하다.
"풀밭에 중빈과 나란히 앉아 '섬집 아기'를 부른다."
내게 이 노래를 들려 주었던 그 친구가 사랑한 나라 터키.
아직도 그 곳에 있을까 궁금하다.
할 말이 많을 거 같은데 입으로 발화되어 나오지 못할 말들인 걸보니 결국은...
"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, 한 사람이 가진 우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,
나아가 더 진한 애정의 세월이 흐르면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,
그 모든 과정을 그는 아직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."
나는 이 과정을 겪어 봤다고 말 할 수 있을까?
아쉽게도 씁쓸한 입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.
"여행이라는 건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, 그래서 여행을 하는 거겠지만,"
그러므로 나는 터키의 올림포스가 궁금하다.
그곳의 오렌지 펜션에 가 보고 싶어진다.
훗날, 이 곳에 오렌지 펜션의 일들을 적어야지 ㅋ
